“평범한 사람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의 세상은 무너졌다.”
영화 *언 허드(Unheard, 2023)*는 청각을 잃은 소녀가 청력을 회복하며 마주하는 미스터리와 진실을 그린 심리 스릴러이자 오컬트 호러다. 음소거된 세계 속에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 하지만 소리를 되찾은 대가로 들리기 시작한 ‘들리지 말아야 할 것들’—공포는 언제나 경계 너머에 있었다.
숨 막히는 몰입감과 청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공포의 세계로, 지금 뛰어들어 보자.
1. 소리 없는 공포 – 청력을 되찾은 소녀, 클로이
유년기의 사고로 청각을 잃은 소녀 클로이. 세상은 그녀에겐 항상 음소거 상태였고, 그녀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남은 음성이 전부였다. 어느 날, 청각 회복 실험의 피실험자로 선택되며 그녀의 삶은 전환점을 맞는다. 실험을 위해 도착한 곳은 그녀의 아버지 별장,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추억의 장소가 아니다.
과거 이 별장에서 클로이는 수막염에 걸렸고, 그로 인해 청력을 잃었다. 더 비극적인 것은 바로 그 사건 이후 어머니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 마을에선 이후로도 수년째 여성들의 실종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평온한 시골의 외형 뒤에는 오래된 악몽이 숨어 있었다.
클로이는 집 안에서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한다. 영상 속에는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그녀는 집착하듯 테이프를 반복해서 재생한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분명 청각을 잃은 그녀의 귀에, TV 속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적적인 청각 회복은 곧 공포로 바뀐다. 들리기 시작한 것은 단지 가족의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귓속을 찢는 듯한 고주파음,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존재가 그녀 곁을 맴돌고 있는 듯한 음성들. 고요 속의 공포가 점점 짙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맞은편 건물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을 느낀다. 그녀를 돕겠다고 나타난 행크, 그리고 우연히 다시 만난 소꿉친구 조슈아.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
2. 들리지 말았어야 할 소리 – 환청인가, 진실인가
임상실험이 성공했지만, 클로이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진다. 과연 지금 들리는 소리는 ‘현실’인가? 아니면 두려움에 짓눌린 정신의 반응인가? 그녀는 방바닥에서 묘한 소리를 듣고, 그것이 어머니의 목소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갈망은 곧 광기와 맞닿는다.
그녀는 행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행크는 클로이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특히 조슈아 가족은 마을에서 ‘문제 있는 가족’으로 유명하다는 말까지. 의심은 증오가 되고, 클로이는 조슈아의 방을 뒤져 그가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조슈아는 뜻밖에도 모든 사실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만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조슈아는 클로이보다 먼저 이 집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는 그 정체를 파악하려 했고, 그 단서가 소리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 클로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 모든 게 단순한 우연이라 믿고 돌아가거나, 혹은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그 ‘소리’ 속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는 것.
하지만 곧 상황은 악화된다. 클로이는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행크의 집에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녀의 휴대폰이 사라졌다는 것. 집 안을 둘러보던 클로이는 충격적인 사진을 발견한다. 행크와 어머니가 함께 찍힌 사진, 그리고 배경엔 아버지의 모습이 가려져 있었다. 퍼즐 조각은 하나로 맞춰진다. 바로 그가 어머니의 실종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것.
3. 침묵의 진실 – 밝혀지는 음모, 살아남은 자
클로이는 이제 의심이 아니라 확신을 품는다. 이 마을에서 연이어 벌어진 여성 실종 사건의 배후는 바로 행크였고, 어머니도 그의 희생자였다. 그는 오랫동안 그 죄를 감추며 클로이의 가족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진실은 ‘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클로이가 들을 수 있게 된 그 공포스러운 음성들은, 죽은 자들의 절규였던 셈이다.
클로이는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벽과 바닥을 파헤치고, 마침내 어머니의 시신이 숨겨졌던 장소를 찾아낸다. 이로써 사건은 종결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감추고 있다.
행크가 체포된 뒤, 마을은 다시 고요해진다. 그러나 클로이는 여전히 간헐적으로 고주파 음성과 이상한 속삭임을 듣는다. 소리를 되찾은 것이 선물인 줄 알았던 그녀에게, 그것은 저주였다. 듣지 말았어야 할 것들을 듣게 된 인간. 그녀는 더 이상 평범한 소녀가 아니었다.
영화 언 허드는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다. 청각이라는 감각을 매개로, 인간이 숨기고 싶은 진실, 잊고 싶은 기억, 그리고 그것을 ‘듣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공포를 감각으로 전달한다. 시각적인 점프 스케어가 아닌, 청각 공포라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마무리 평가
2023년작 언 허드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느릿하게 전개되지만, ‘소리를 듣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공포’를 정교하게 구축한다. 영화의 초반은 조용하고 침착하다. 클로이의 일상에 천천히 균열이 생기고, 그것은 사운드 디자인이라는 날카로운 칼날로 관객의 신경을 찌른다.
예측 가능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그 감각적 표현과 심리 묘사는 영화의 무게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주인공 클로이 역을 맡은 라클란 왓슨은 고요한 눈빛과 절규 사이를 오가며, 트라우마를 지닌 젊은 여성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언 허드는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모든 진실은 결국 들린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가가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