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마드리드 도심 한복판, 대낮에 벌어진 인질극. 무심코 배팅장에 들렀던 도박중독자 세르히오의 삶은 그날로 뒤바뀐다. 경찰 저격수 파블로, 범죄자 알레오, 그리고 세르히오—이 셋은 뜻밖의 사건으로 서로의 운명에 얽히게 되고, 한 아이의 죽음과 장기기증을 매개로 극한의 도덕적 갈등이 펼쳐진다. 영화 《파툼》은 거대한 액션보다 묵직한 침묵으로 관객의 가슴을 조인다. 진짜 총알보다 무서운 건, 사람의 마음속 ‘판단’이라는 걸 강하게 되새겨주는 작품이다.
🎯 1. 불운한 사내의 한순간의 선택, 스페인 도심에서 벌어진 대낮의 인질극
《파툼》의 시작은 한 남자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세르히오는 스포츠 베팅 중독자다. 아내 리디아는 그런 그를 더는 참을 수 없어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떠난 상태. 하지만 세르히오는 그 와중에도 베팅장에 들렀다가 그날 벌어진 무장강도 사건의 한복판에 휘말리게 된다. 강도 알레오와 그의 일당은 돈을 탈취하려다 실패하고, 우발적으로 총격을 가해 사람을 죽이고 만다.
경찰은 즉시 현장을 포위하고, 인질극은 초단위로 상황이 악화되어간다. 작전팀에는 저격수 파블로가 포함돼 있는데, 그 역시 병원에 위독한 아들이 있어 집중력에 문제가 생긴 상태. 결국 그가 집중력을 잃은 찰나, 인질 중 하나인 어린 소년 ‘다니’가 총에 맞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된다. 파블로는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죄책감에 휩싸이고, 세르히오는 눈앞에서 아들이 쓰러지는 걸 목격하고 분노에 사로잡힌다.
이 전반부는 한순간의 도박 같은 선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특히 경찰과 인질, 범인이라는 익숙한 구도가 아닌,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인물들이 엉키면서 운명의 사슬이 만들어지는 구조는 제목인 ‘파툼(Fatum)’—즉, 운명이라는 키워드를 설득력 있게 던진다.
🫀 2. 아들의 심장은 살았지만… 장기기증과 복수 사이, 무너지는 두 남자
세르히오의 아들은 결국 뇌사 판정을 받는다. 병원은 장기기증을 제안하고, 놀랍게도 수혜자는 바로 경찰 저격수 파블로의 아들 로이다. 파블로는 자신의 실수로 아이가 쓰러졌고, 이제는 그 아이의 장기가 자신의 아들을 살린다는 복잡한 죄의식에 빠진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던 세르히오도 곧 진실을 알게 된다. 아이의 심장은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파블로의 아이에게 이식될 운명이라는 것. 그 순간 세르히오는 장기기증을 철회하고, 파블로를 찾아가 진실을 요구하며 복수를 시사한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결정을 내린다.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장기기증을 다시 허락하지만, 단 하나의 조건을 단다—자신 대신 범인 알레오를 제거해달라는 것.
파블로는 깊은 딜레마에 빠진다. 정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과 사적인 감정으로 처형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나 죄책감에 짓눌린 그는 결국 그 요구를 수락하고, 범인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 대목은 매우 강렬한 도덕적 충돌을 보여준다. ‘용서란 무엇인가’,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 ‘복수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등의 주제를 담고 있어 단순한 인질극을 넘어선 깊은 울림을 전한다.
🛑 3. 총을 들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 침묵이 전하는 결말의 무게
드디어 계획된 순간, 파블로는 범인 알레오를 제거할 수 있는 저격 위치에 선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그 짧은 찰나, 내면의 갈등이 다시 찾아온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그 순간 범인은 병실에서 헬기로 이송된다. 동시에 세르히오도 마음을 바꾸고 병원으로 향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결국 세르히오 역시 범인 앞에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이들은 그토록 복수를 갈망했지만, 그 누구도 끝까지 ‘살인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이 장면은 총알보다 침묵이 더 강하게 울리는 인간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세르히오는 비록 아들을 잃었지만, 다른 가족들을 위해 자제했고, 파블로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용서를 선택한다.
시간이 흘러, 한 공원에서 세르히오는 파블로와 건강해진 아들 로이를 마주친다. 비록 자신은 아들을 잃었지만, 그의 심장이 지금도 다른 아이의 몸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묘한 위안이 된다. 두 남자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 결말은 말없이 감정을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유럽식 서사다. 분노, 복수, 죄책감, 용서… 이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이 총알 한 발 없는 클라이맥스를 완성하며, 오히려 침묵의 힘이 얼마나 큰지 절절히 느끼게 만든다.